그들은 이름과 기원을 모른다. 그들에게 존재는‘~이다(is).’가 아니라 ‘~이고(and),~이고(and),~’이다. 그들에게 삶은 자신의 신체를 토대로 주변과 관계를 맺어가는 접속의 움직임이다. 2010년 즈음 그들은 현대의 환경조건을 탐지하는 최선의 방법은 맨몸으로 그 속에서 생존해보는 것이라 믿었다. 생존방식인 AND로서 자신을 부르며……. AND는 나와 우리의 경계를 모른다. 나를 구성하는 것이 우리이기도 하기에. 그들은 우리(나)의 신체와 결부된 다양한 스케일의 환경에 시/공간적으로 배제 또는 잠재되어왔던 것들에 주목한다. 위계적인 구조에서 은폐되었던 다양하고 대립적인 가치와 욕망들을 드러내고 새롭게 배치하는 과정에서 건축적 비전을 제시하고 소위 문화적 비평의 기능을 수행한다. AND는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모른다. 아니 지운다. 그들은 또한 공공과 개인, 도시와 시골, 세계와 지역, 자연과 인공 등의 환경조건들이 뚜렷한 경계(차이)를 잃어버리고 공생, 상호 번식(cross-fertilize)하는 것에 주목한다. 끊임없는 이종교배에 의해 모든 것이 기존의 가치를 상실하는 듯 보이지만, 한편 모든 것이 새롭게 지속되고 있는 역설적 현실에서 비옥한 대지의 충만함을 보았다. AND는 그곳에 양자택일과 동일성의 논리(or)가 아니라 타자의 긍정과 공존의 실천(and)이 가지는 잉여가치를 찾는다. 그들은 무엇으로 부르기 전에 이미 그곳에 꿈틀대는 힘을 감지하고, 번식시키는 행위를 통해 생성하는 차이의 건축(Architecture of Novel Differentiation)을 계속한다.